중요건물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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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화전(보물 제819호) 2.중화문(보물 제819호) 3.함녕전(보물 제820호)
4.석조전 5.석조전 서관 6.정관헌
7.석어당 8.덕홍전 9.준명당
10.즉조당 11.대한문 12.광명문
13.중명전

1.중화전(보물 제819호)

중화전 규모:409.3㎡
연혁:고종께서 1897년에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하면서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하였으므로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다. 본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4월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으며, 중화전의 정문으로 중화문이 있다.

2.중화문(보물 제819호)

중화문 규모:83.31㎡
연혁:1902년 건립된 중화전의 정문으로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만들어
새웠으며 본래 중화문 좌우에 행각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동측에 일부만
남아있다.

3.함녕전(보물 제820호)

3.함녕전(보물제820호) 규모:343.77㎡
연혁:1897년 건립되었으며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1904년 4월 함녕전
온돌 수리 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주요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함녕전은 같은 해 12월에 중건되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께서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4.석조전

4.석조전 규모:3,986.65㎡
연혁: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의 석조 건축물로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였고, 1900년 기공되어 1910년에 준공되었다. 고종(高宗)께서는
석조전에서 고관대신과 외국 사절들을 만나는 용도로 석조전을 사용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기 이전까지는 현대미술품을 진열하였으며
1946년~1947년까지 미·소 공동위원회가 사용하였고, 1948년~1950년에는
유엔 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건물 일부가 파괴되어 1955년 육군 공병단에 의해 수리되었으며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하기도하였다.

5.석조전 서관

5.석조전서관 규모:3,428.47㎡
연혁:1936년 8월 기공하여 1938년 6월에 준공하였으며 이왕가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6.정관헌

6.정관헌 규모:269.55㎡
연혁:19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서양 양식을 모두 갖춘 정관헌은
고종께서 다과회를 개최하고 음악을 감상하시던 곳이며 한때 이곳에
태조(太祖)의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다. 설계는 사바찐이 하였으며,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5칸이다. 정관헌의 지붕은 동양식으로 팔작 지붕이 덮여있고,
둘레에는 서양식으로 차양칸이 위치한 독특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정관헌
난간에는 사슴, 소나무, 당초, 박쥐 등 전통 문양을 넣었다.

7.석어당

7.석어당 규모:229.19㎡
연혁: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고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유일한 중층의 목조 건물로 선조(宣祖)께서 임진왜란
중 의주로 가셨다가 환도한 후 이곳에서 거처하셨고 1608년 2월 선조가
승하한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또한 인목왕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光海君)을 석어당 뜰 아래
꿇어 앉히고 광해군의 죄를 문책한 곳 이기도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아래층은 정면 8칸, 측면 4칸이며 위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8.덕홍전

8.덕홍전 규모:127.54㎡
연혁:함녕전을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할 때 일반 빈객들을 접견하기 위하여
1906년 건립한 후 1911년에 개조하였다. 덕홍전은 주로 황제가 외국 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 건물이다. 측면에는 좌우 툇간이 있어서 전체의 평면은
정사각형에 가깝다. 이 건물 주위에는 행각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행각
일부만 함녕전 남행각에 연접되어있다.

9.준명당

9.준명당 규모:231.43㎡
연혁:이 건물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종(高宗)때에 중건된 것으로
추측되는 목조 건물로 즉조당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고종께서 신하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으로, 함녕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고종의 침전으로
쓰였다. 정면 6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며 높은 기단위에 세워졌다.
좌우 툇간에 쪽마루를 두고 있다. 1916년 4월에는 덕혜옹주 교육을 위해
이곳을 유치원으로 개설하기도 하였다.

10.즉조당

10.즉조당 규모:131.93㎡
연혁:준명당(俊明堂)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이 건물은 15대
광해군(光海君)과 16대 인조가 즉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897년 고종의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직후 정전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이때
즉조전의 이름을 태극전, 중화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2년 새로운
정전이 세워지자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1904년 화재로
손실되었는데 그해에 다시 석어당, 함녕전과 같이 중건하였다. 고종의 후비인
순헌황귀비 엄씨가 1907년부터 1911년 7월 승하할 때까지 이곳에서
거처하셨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11.대한문

11.대한문 규모:83.31㎡
연혁:원래 궁궐의 정문은 남쪽으로 난 인화문(仁化門)이었는데, 환구단 건립
등으로 경운궁의 동쪽이 새로운 도심이 되자 동문인 대안문(大安門)을
정문으로 삼았다. 1906년에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서쪽으로 물러 앉게 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으며,
대한문을 지나 건너게 되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 복원한 것이다.

12.광명문

12.광명문 규모:56.53㎡
연혁:1897년에 건립하였으나 1904년에 소실되었다가 중건된 목조 건물로 당초
함녕전의 정문이었으나 1938년 미술관 개관 시 흥천 사종과 창경궁 자격루를
진열하기 위하여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13.중명전

13.중명전 규모:784.49㎡
연혁: 연혁 : 1897년 경복궁 집옥재와 같은 황실의 도서와 보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계획되었으며, 건립 시 수옥헌(漱玉軒)이라 불렸다. 경운궁(현 덕수궁) 담장 밖, 미국공사관(현 미국대사관저) 서쪽에 장로교 여선교사들이 세운 정동여학교 터를 인수하여 문화각(文華閣)과 정이재(貞彛齋), 외(外) 화보(貨寶)곳간과 함께 건립되었다.
설계는 한성부 건축기사로 초빙된 미국인 J.H. 다이(Dye)가 하였으며, 1899년 초 준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1층의 서양식 건물로 완성되었으나, 1901년 11월 화재로 전소되어 이듬해 회랑이 있는 2층 건물로 재건축되었다.
1904년 4월 14일 대화재로 황궁이 전소되자 고종이 이 권역으로 넘어와 수옥헌을 편전이나 알현실로 사용하였다. 이때 황족의 거처가 구비되고 의정부 건물이 신설되는 등 수옥헌의 권역이 확대되었다.
1905년에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수옥헌을 에워싸고 강압적으로 조약 체결을 강요하여 강제로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다. 이듬해부터 수옥헌은 중명전(重?殿)으로 불리었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노력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고, 특히 1907년 헤이그로 파견한 특사 사건을 빌미로 강제퇴위 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고종은 덕수궁 내 준명전(濬明殿)으로 이어하였다. 이후 중명전은 1912년경부터 외국인구락부로 사용되다가 1925년 화재로 외벽만 남기고 소실된 후 형태가 변경되어 재건되었다. 광복 이후 서울클럽, 민간인 사업체 등에서 사용하였다가 2007년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2010년 실내에 전시물을 갖추어 대중의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